인생의 나열

죽기 전에 볼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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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역설

아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것이 '반드시'라는 조건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미 아는 것에 마음을 졸이는 사람은 없다.아는 것은 배신할 여지가 없다. 믿음은 불완전하다.100%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100%'와 '믿음'은 서로 붙을 수 없는 모순된 말이다.그러니 기독교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100% 믿으십니까?"라는 목사님들의 말씀들은 잘못된 말이다.100%엔 '앎'이 붙을 수 있다.믿음은 언제나 배신할 수 있다. 신의 존재를 믿는 집단과 아는 집단 중 전자가 배신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그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이처럼 믿는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99%와 100%의 1%의 차이일 수 있지만 99.9%와 0.01%의 차이일 수 있지만전혀 다른 영역이다.조금의 의심 조금의 불..

나의 철학 2024.12.29

세상을 사랑하기 전

나를 탓하고 나를 부정하면세상을 탓하고 세상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세상이 가치 있으려면 먼저 나 자신이 가치 있어야 했다.그러려면 우선 내 과거를 부정하면 안됐다.내가 지내온 시간들을 부정해선 안됐다.내가 살아온 시간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아선 안됐다.나밖에 알고 있지 않은 이 시간들을 내가 미워하고 내가 가치를 부정해 버려선 안됐다.내가 사랑해주지 않아선 안됐다.나 말고 사랑해 줄 사람은 없었다. 내 지난 시간들을 사랑하고내가 지내고 있는 시간들을 인정해 주며내가 지낼 시간들을 진정 믿어줄 수 있는 건나 말고 없었다. 아무리 가까운 타인에게도 이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그것은 잠깐의 위안을 바라는 어리석은 욕심이었다.온전히 나를 사랑해 주고 이해해 주고 믿어줄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나는 나를..

나의 철학 2024.12.29

2024년 12월 28일

그날따라 견뎌지지 않는 외로움이 있다.한없이 착잡한 기분으로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자신에게 자신의 삶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에 최선을 다해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그럼에도 결과만으로 더 나은 사람과 부족한 사람을 나누고 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탓하지 말라 이야기한다.그럼 무엇을 탓해야 할까운?어느 쪽을 탓하던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꼭 무언가를 탓해야 할까?무엇도 탓할 필요가 없다면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 자신도나를 둘러싼 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받아들이면무엇도 탓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 말은 쉽다. 사실 무언가 노력해 결과를 얻었을 때도 그렇게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이제 앞자리가 3으로 바뀌어간다.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은 알아가긴커녕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나의 우울 2024.12.28

아포칼립스를 원하는 방관

뭔가 오늘로 다 끝나버려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일까생각일까무엇도 애매한감 또한 애매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일까 아니 나는 지금 편안한데그러니 바람도 아니다.방관이다.그래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는그렇지만 그랬으면 조금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약간은 방관에 기운 방관 세상이 멸망해 버려도그 속에서 살아가는 내가 그려진다.언젠가는 그렇게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차디찬 콘크리트 산 위에서 다 부서져버린 세상을 보고 일출이나 일몰을 보고 싶다. 인간은 아무리 타인을 위한다 해도모두 본인을 위한 것이다.본인에게 나아짐이 없으면 이타 또한 없다.

나의 현재 2024.12.13

개화시기

젊음은 원래 서툰 것일까다른 사람도 나와 같을까그 서투름과 투박함속에서 노력하지 않은 자의 말로일까가만, 그러고 보니 나는 노력하지 않았었나살아가기 위해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었나 나는 나만 내 젊음이 서투른 것 같다고다른 인간들의 젊음은 화려하고 활짝 핀 꽃 같은데난 왜 아직도 피우지 못하고 있는 거냐고억울하다고 애써 투정 부려도 믿는 수밖에 없다.나도 피울 수 있는어떤 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나도 피울 수 있는 꽃봉오리를 가지고 있다고아는 수밖에 없다.믿는 건 소용없다. 믿음은 언제든지 배신하니까나에게도 피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아는 수밖에 없다.

나의 현재 2024.12.13

나의 테마

잊고 잃는 계절이다. 잃고 잊어가는 계절이다. 무언가를 얻고 나면 반드시 무언가를 잃는다. 이것은 상실감인가...어쩐지 돌아보는 것 만으로 쓰라린 내 사랑스러웠던 계절들이 그 당시엔 아름답다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지금에서야 날 다시 휘저어놓을 때면 이미 다 나은 흉터가 쓰라리듯이 사무치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오늘도 내일도 아득한 옛날도

나의 우울 2024.12.05

낭만의 역설

"인생은 낭만이어야 했는데" 라는 누군가의 글을 봤다. 글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끄적여보기로 한다....그랬나 인생은 낭만이었어야 했었나 이 말은 인생은 낭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낭만이 아니었지 어째서였지 왜 낭만일 수 없었지 애초에 낭만이란 뭘까  무얼 두고 낭만이라 부르는 것일까 국어사전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영어사전은 'romance'...생각해 보니 낭만은 어쩐지 낯설지 않은 게 가까이 있음직하면서도 막상 찾으려면 쉽게 찾아보기 힘든 듯한 느낌이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현실에 살고 있어서, 낭만이란 현실에 매이지 않아야, 떠나야만 보이는 것이기 때문일까 "인생은 낭만이어야 했는데"라는 말은 그럴 수 없었던 현실에 ..

나의 철학 2024.11.27

겨울에 피는 꽃

오늘도 나밖에 보지 않는 글을 쓰러 왔다. 누군가에게 읽혔으면 하는 기대감이 없는 건 아니다. 그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알아도 원하는 게 인간이다. 바라고 갈구하는 게 본능인 것이 인간이다....문득 '누구나 인생에 꽃이 피는 순간은 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실제로 있는 말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은 정말일까. 내 인생은 꽃이 피었을까. 피었다 졌지만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직 피지 못한 봉우리일까. 피었다 졌다면 아쉬울 따름이다. 피어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걸 테니까. 과연 죽을 때까지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아직 피지 못한 봉우리인 채로 있는 것도 불안하다....꽃은 만개하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이나 힘이 필요할까 아니면 자연스레 피었다 지..

나의 현재 20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