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열

죽기 전에 볼 회고록

소설 10

2024.08.08

만약 죽기로 결심했다면 오늘이 최고로 적합한 날이 아닐지 K는 생각했다. 우울하기 때문에, 괴롭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오늘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선명할 때 사람은 결심한 무언가를 실행하기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도 사물도 어떠한 것들도 점점 의미를 잃어가기 시작할 때 K의 세상도 색을 잃어간다. 그렇게 색을 잃은 지, 이미 잃어가고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가장 사랑했던 색을 잃은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어떠한 색이라도 잠시나마라도 내 세상을 칠해줬으면""조금이라도 세상을 더 아름답게 여행할 수 있다면" K는 여전히 해방을 갈망하나 세상 또한 갈망하고 있다. 늘 그래왔듯 여전히 K는 무엇도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선택을 회피한다. 그렇게 나약한 K가 만들어졌다.

소설 2024.08.08

-N-

이것이 N에 관한 마지막글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그러나 몇 자 끄적여본다. N과 2년 넘게 만나면서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궁금한 점이 없었다.궁금하지 않았다.다 알지 못했겠지만 다 안다고 생각했다.레퍼토리가 항상 비슷했기 때문에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느꼈나 보다.그리고 N은 나에게 헤어짐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어떨 때는 질투를 유발하기도 했다.그러나 나는 질투가 나지 않았다.빼앗겨도 상관없다는 느낌보다는 그녀는 나를 두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어린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그다지 질투가 나지 않았다. 그것보다 그런 건 쓸데없는 연인행세라는 느낌이 들었다.우리에겐 그런 것이 이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커플링이나 팔찌 등을 요구했다.그러나 나는 기억하고 있으면..

소설 2024.05.25

사랑했던 'N'에게

한때 내가 널 더 사랑했던 때가 있었다.그때 난 너에게 '내가 항상 네 옆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고 말했었지그 말은 들은 그 당시의 네 심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그러나 이 말이 어지간히 너의 마음에 칼날이 되어 괴롭히고 상처를 내었는지이내 우리 사랑의 무게 추는 네 쪽으로 기울어갔다.다행인지 불행인지 너의 순진무구함에 내 비열함과 이기심은 꾀나 효과가 있었다.이후로도 나는 너에게 나의 소중함을 강요했고 세뇌시켰다.그렇다. 너는 나를 한 존재로 사랑하려 했고나는 너를 한 존재로 소유하려 했다.그러자 너도 나를 소유하려 했다. 내 수많은 요구와 소유욕으로 너의 많은 것들이 내게 맞추어졌을 때,그 수많은 아픔과 깎임, 희생이 나의 모양에 너의 퍼즐이 끼워 맞춰지게 되었을 때,내 비열하고 추잡한 욕망은 ..

소설 2024.05.14

7

경사스러운 날이다.드디어 K의 마음이 죽었다.K의 마음이 그제야 처형당했던 것이다. K는 한편으로는 후련하다.이제 여자는 성노예거나 아이를 낳는 기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친구는 그저 일만 하는 기계이자 머저리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부모님도 길러주신 조부모님도 모든 의미가 사라졌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 맞았다.세상에는 그 어떤 뜻도 의미조차 없다.그냥 그 속에서 시간과 싸우며 살아간다.시간과 친하게 지낼지 싸우며 지낼지의 차이일 뿐이다. K는 이제 어떻게 시간과 친해질지친해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대적해야 할지 그것만 고민할 뿐이다.맑다. 정신이 개운하다. 잡생각은 온데간데없다.그저 죽음이 조금 덜 아팠으면 좋겠다.대신 K는 자살할만한 깜냥이 있는 사람은 아니기에피차 시간과 어떻게 지낼지에 대한 고민만 하면..

소설 2024.05.07

4

K는 신앙인이다. K는 신을 믿는다. 그래서 욕을 했다. 목사님의 설교를 헐뜯었다. 욕을 서슴지 않고 설교를 씹어댔다. 마구 씹어 목사님의 말을 욕과 함께 집어삼켰다. 억지로 밀어 넣었다. K는 억지로 목사님의 말을 욕과 버무려 씹어 삼켰지만 목사님은 K의 시간을 집어삼켰다. 왜냐하면 목사님은 똑같은 말만 했다. 다리는 저려왔고 자세를 바꿔도 나아지지 않았다. 설교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여자의 아멘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어떤 짐승의 외침처럼 아멘소리는 날카로워지고 커졌다. K는 그 소리가 마치 K가 욕과 함께 목사님의 말을 집어삼키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 여자는 무엇과 함께 목사님의 말을 씹어 삼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튼 무언가와 함께 씹어 억지로 삼켰다고 생각했다. 다리가 저려서 그랬..

소설 2024.04.14

3

K는 A를 만나고 왔다. 그리고 이 글은 K가 A를 만나 함께 있으며 쓴 글이다. 나는 잘 사는 척하는 허풍쟁이였다.나는 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쓴 겁쟁이였다.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가면이 벗겨졌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 진짜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엔 무엇도 없었다.마침내 가면을 벗겨냈다는 감동도, 그동안의 울분도, 반쯤 감긴 눈으로 무엇을 응시한 채도 모를 다 포기한 얼굴이었다.더럽게 우스꽝스러웠다. 그렇게 벗겨내고 싶던 가면을 벗겨낸 거 같은데, 드디어 진짜 얼굴을 가진 것 같은데 이런 더러운 표정이라니. 씨발. 하도 울다 울고 또 울다 지긋지긋하게 울다 지쳐서는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어떻게든 쥐어짜 내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의 표정. 그냥 무엇도 바라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

소설 2024.04.13

2

K는 자신은 가면을 벗었다고 생각한 채 짓거리고 있다. "가면을 벗었다지만 웃고 있는 새끼들은 죄다 거짓말쟁이들이야. 가면을 다 벗었는데 어떻게 쳐 웃고 있을 수가 있냔 말이야. 내 말은, 가면을 죄다, 싹 다, 조각 하나 없이 벗었으면 적어도 질질 짜고 있거나 더 짜낼 눈물도 없어서 퀭한 눈에, 다크서클은 길쭉하게 내려왔을테고, 눈동자는 한없이 쳐내리 깔아야겠고, 아무 희망 없이 체념한 얼굴로, 처참한 표정으로, 그 표정자체로 웃음거리가 될만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 정상인데, 어떻게 가면을 벗었다고 주장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쳐 웃고 있지? 역겨운 새끼들. 거짓말이 표정에 밴 새끼들. 가면이 지들 얼굴에 달라붙어있는지도 모르고 매일 가면을 씻고 닦으며 화장품을 치덕치덕 바르며 가면에 어떤 색을 칠할지 고민..

소설 2024.04.13

1

K는 A를 만나고 멍청한 정신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글쓰기로 A와 그 외 K가 만난 여자들을 씹었다. "개씨발 멍청한 년들. 얼마나 멍청하면 나 같은 머저리한테 지들 세상을 갈기갈기 쳐 찢기지? 얼마나 머저리면 나 같은 병신한테 지들 마음을 그렇게 갈기갈기 쳐 찢겨서는 그 진주 같은 눈물을 쳐 짜내냔 말이야. 진주가 얼마가 귀한데, 그것도 모르고. 하여간 사람 보는 눈도 경제적 시야도 그렇게 좁아서야, 그래서 니들이 그렇게 당했나 보다. 멍청한 년들." 하지만 며칠 지나자 않아 K는 그렇기에 A를 사랑했다는 것을 되뇌었다.

소설 2024.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