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열

죽기 전에 볼 회고록

나의 철학

안식

부랑자뜨내기 2024. 7. 18. 15:50

반년 후면 나도 곧 서른이다.

 

미리 서른이 되면서 느낀 게 있다.

 

영원함. 인간이 그렇게도 갈망하는 영원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기쁨도, 사랑도 없고 영원한 슬픔과 괴로움 또한 없다.

 

------------------------------------------------------------------------------

 

모든 기쁨이 언젠가 사라질 기쁨이라면,

그것을 기꺼이 취해야 하는 걸까

경계해야 하는 걸까

 

모든 슬픔이 언젠가 사라질 슬픔이라면,

그것을 두려워 피해야 하는 걸까

덤덤이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경쾌한 현관문의 두드림 소리

문을 열었더니 나의 방은 활기가 차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은 돌아갔다.

그랬더니 나의 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만이 가득했다.

 

'쾅쾅' 매섭게 두드리는 현관문 소리

문을 열었더니 나의 방은 곧 엉망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은 돌아갔다.

나는 슬픔에 빠졌다. 그리고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을 정리하며 무엇이 문제였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렇다. 기쁨의 이면은 상실감이다. 잠시 왔다 돌아가는 손님이다.

그렇다. 슬픔의 이면은 돌아봄이다. 내 방을 한창 어질러놓곤 깨달으라 한마디 매몰차게 내던지고 가는 손님이다.

 

------------------------------------------------------------------------------

 

안식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독교에서 그렇게나 노래를 부르는 안식이 도대체 무얼까

 

이제 와서 깨닫는 안식은 기쁨도 슬픔도 없는, 다시 말하면 있지만

 

나에게 기쁨도 슬픔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30살밖에 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친다. 삶에 치인다.

 

앞으로 이렇게 몇십 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짐이다.

 

그래서 나는 안식하기로 했다.

 

모든 기쁨도 이내 사라질 기쁨이다.

모든 슬픔도 이내 사라질 슬픔이다.

 

그렇다면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경쾌한 현관문의 두드림을 경계하기로 했다.

매몰찬 쾅쾅 소리를 들었을 땐 현관문을 덤덤히 열어주기로 했다.

 

기쁨을 경계하기로 했다. 기쁨은 언젠가 상실감으로 뒤통수를 치니까

슬픔을 반기기로 했다. 슬픔은 언젠가 배움이라는 보따리를 보내오니까

 

모든 기쁨도 슬픔도 영원한 건 없다.

언젠간 모두 사라질 감정이다.

 

그러니 나는 안식하기로 했다.

'나의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일에  (0) 2024.09.11
기대감  (0) 2024.08.11
나의 배낭  (1) 2024.06.21
무의식적 모순  (1) 2024.06.21
취함  (0) 2024.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