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물감 같다. 뭐든 쉽게 질려버리는 나의 세상에 색을 입혀준다. 어떤 책을 읽으면 한동안은 빛이나 사물의 색이 진하거나 건물의 모서리가 더 모질 때가 있고 사람을 보면 이 사람과는 연이 없겠구나 라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색의 경계가 명확했다. 서로를 간섭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색을 지켰다. 그 광경이 예뻤다. 집에 오는 길 횡단보도에서 어떤 여자를 마주쳤다. 나와는 연이 없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떠한 기대조차 들지 않았다. cctv의 녹색 깜빡임의 주기가 일정했다. 그 색이 진했다. 원룸에 주차된 은색코팅된 자동차의 은색이 짙은 은색이었다. 노란 가로등빛의 퍼짐이 뾰족하면서도 뾰족하지 않았다. 위협적이지 않는 둥근 뾰족함이었다. 또 어느 한쪽도 더 넓게 퍼지려고 욕심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