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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철학

세상은 적이 아니라 친구였다.

부랑자뜨내기 2024. 5. 16. 20:44

운동을 끝내고 이상한 상상을 했다.

대학동기의 결혼식에 가서 대학당시 좋아하던 여자애가 내 바지에 뭔가를 묻혀서 한창 미안해하며 그 애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어쩐지 미소가 지어지다가는 이내 폭소해 버리는 상상.

 

그리고는 이상한 말을 내뱉어버렸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렇게 미안해해. 어차피 죽을 때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 건데."

 

그리고는 이상하리만큼 집에 돌아오는 길이 가볍고 경쾌했다.

이 상상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돌아보며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내가 입은 옷은 사실 내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세상에게 빌린 것이었다.

죽을 때, 내가 보이지 않게 되고 이내 가벼워졌을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천조각.

 

내가 가진 모든 물건도, 보고 있는 형체들도 세상에게 받은, 다시 말해 빌려 받은 눈과 몸이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세상에게 나는 삶을 받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질감이 느껴진 건 지금껏 머릿속엔 욕과 부정들이 가득 차 표정에 묻어난 채 살았다.

그러나 너무나 이질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니 가벼움과 경쾌함이 발걸음에 묻어났으며 미소와 인자함이 얼굴에 묻었다.

 

어차피 내 몸도, 물건들도, 더 나아가 삶도 다 세상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선물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세상을 적대시했다.

어쩌면 세상은 제법 서운했을 것이다. 

뭘 좋아할지 몰라 준비했다며 삶을 선물해 주었는데, 난 그게 정말 싫다고. 왜 준거냐고. 다시 가져가라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생각이, 마음가짐이 앞으로의 나의 삶을 지배해 버렸으면 좋겠다.

세상과 적이 아닌 친한 친구가 되게 해 줄 이 태도가 내 온 삶을 지배하기를.

무거움과 힘없는 발걸음보다 리듬감 있는 발걸음이 내 발을 지배하기를.

욕지거리와 부정이 가득한 얼굴보다 미소가 가득한 얼굴이 내 삶을 지배하기를.

 

이 글이 영원토록 생각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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