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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철학

파도

부랑자뜨내기 2024. 3. 29. 22:36

1

정세랑 작가의 책 '피프티 피플'을 보면 사람이 죽었을 때 '세상을 버렸다'라고 표현한다.

한 두 번이 아니라 매 번 같은 표현으로 '세상을 버렸다'라고 한다.

인상 깊었기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에게는 '세상은 끌려다니기 위한 것이 아님'을 죽음이라는 묵직한 소재로 강조하는 것 같았다.

파도에 휩쓸리지 말고 파도를 타라고 말하는 듯한, 어찌 보면

죽음도 우리에게 오는 파도니까 그것에 휩쓸려 '세상에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파도를 타고 '세상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도 사람은 자기 삶에 있어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세상을 버렸다'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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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상의 파도는 늘 뜻하지 않게 온다.

거슬러 휘청거리다 휩쓸릴 것인지

유연하게 대처해 자신 있게 파도를 탈 것인지.

 

파도를 타다 휩쓸릴 때도 있다.

그러나 시작부터 겁먹어 가만히 서있다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보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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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엔 보이지 않다가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나는 파도도 있다.

이 경우엔 대처할 겨를도 없이 파도에 잠겨버릴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파도는 어찌 보면 인생의 묘미이지만 어떨 때는 비겁하기 짝이 없다.

세상을 버리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에게 오는 죽음이라는 파도는 무엇일까

멀리서부터 파도가 보여 올라탄다거나 휩쓸릴 것에 대해 미리 준비할 시간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또한 나의 운명이니 인정하고 담담히 죽음이라는 파도 위에 올라타겠습니다' 하고 발 디딜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면,

이 경우에도 세상을 버렸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삶에 대한 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표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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