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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A를 만나고 왔다. 그리고 이 글은 K가 A를 만나 함께 있으며 쓴 글이다.
나는 잘 사는 척하는 허풍쟁이였다.
나는 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쓴 겁쟁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가면이 벗겨졌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 진짜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엔 무엇도 없었다.
마침내 가면을 벗겨냈다는 감동도, 그동안의 울분도, 반쯤 감긴 눈으로 무엇을 응시한 채도 모를 다 포기한 얼굴이었다.
더럽게 우스꽝스러웠다. 그렇게 벗겨내고 싶던 가면을 벗겨낸 거 같은데, 드디어 진짜 얼굴을 가진 것 같은데 이런 더러운 표정이라니. 씨발. 하도 울다 울고 또 울다 지긋지긋하게 울다 지쳐서는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어떻게든 쥐어짜 내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의 표정. 그냥 무엇도 바라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얼굴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얼굴을 찾은 채 너와 함께 왔던 장소를 찾았다.
네가 내게 준 호의들, 관심들, 사랑들. 그리고 그 모든 걸 갈기갈기 찢어버린 나. 그리고 마치 네가 내 옆에 와있는 듯했다. 내 옆에 앉았다가, 때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다시 옆에 와서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었지. 마치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던 너였다.
그래. 이 글은 잊고 있던 너를 다시 불러내기 위한 소환의식이다. 너를 불러내는 주문이며 인사치레를 위함이었다.
너를 보러 올 생각은 없었지만 찾은 장소에서 네가 있었으니 인사라도 하겠다는.
없는 염치를 무릅쓰고 어차피 넌 내 상상의 모습이니까, 더 이상 널 죽일 일은 없을 테니까 내 자학행위 하나로 널 마주할 수 있으니까, 그거면 족하다 생각해 이 자리에 앉았다.
몸이 많이 약하던 너였는데 괜찮아졌을까. 나로 인해 악화되지는 않았을까.
내가 갈기갈기 찢어놓은 네 세상은 좀 복구가 됐을까. 되려 가시를 품게 됐을까.
너를 막상 불러내 인사했는데도 넌 받아주지도 않고 그저 상상의 모습으로 네 할 일만 하고 있다.
옆에 앉았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내가 쓰는 글을 함께 지켜보고.
그리고는 다시 뒤돌아 너의 갈길을 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 인사할 수 있어 기뻤다.
그래도 너를 완전히 보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때 내 얼굴은 가면이었지만 가면을 쓴 채로도 널 좋아했다.
그리고 내 가면까지도 좋아해 줘서 고맙다.
잘 가 또 올게. 내가 좋아했지만 동시에 갈기갈기 찢겨버린 A
그 후에 K는 A의 가면이 얇아서, 혹은 군데군데 비어있어 맨얼굴이 보였기에 A를 좋아했던 거라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