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통장잔고에 199원이 남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무력감이나 우울감에 빠지지 않았다.
캄캄한 동굴에서 지내다가 햇볕에 이제 막 나온 사람처럼 약간의 설렘과 허탈감을 느꼈다.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마침내 무언가의 굴레에서 벗어난 듯이
드디어 통장잔고가 바닥났구나 하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신기했다.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길래 이렇게 홀가분하며 웃음기가 도는지, 아니면 드디어 돌아버린 건지 찾기로 했다.
돈일까? 무한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난 걸까?
생각해 보니 돈이 없어 걱정과 우려가 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돈이 수중에서 완전히 사라지니 돈으로부터의 해방감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은 카페에서 마시는 5300원짜리 킷캣스무디가 이 해방에 있어 끝나지 않던 굴레의 마지막 사치라 생각했다.
그렇다. 사치로부터의 해방. 무언가 더 좋은 것으로부터의 해방. 삶의 윤택함으로부터의 해방.
욕심과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돈이 있을 때는 어떻게 나를 더 채워야 할지, 어떻게 나를 더 잘 보일 수 있을 것인지, 줄어드는 잔고와 채워지는 잔고를 보며 내 삶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더 채워갈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끝없이 채워지지 않고 끝없이 지킬 수 없는 것들을.
이제와선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적당히 채우고, 적당히 꾸미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배가 고프면 고픈 대로.
있을 때보다 없을 때의 기준만을 채우면 되니 불안하기보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무언가를 꾸미거나 지어낼 필요도 없다.
드디어 내 안에 깊숙한 곳. 가장 안쪽 끄트머리에 자리하던 가면 하나를 벗어던진 느낌이다.
그랬다. 이 묘한 해방감이란,
부담과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욕심과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타인과 돈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갓 나와 세상을 처음 마주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모든 것이 생소한 느낌.
나를 이룬 게 없는 사람이라 불러도, 거지라 부르든 한심한 인간이라 부르든 그다지 상관없다.
틀린 말도 아니라 화가 나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말들인 것 같다.
그러니 타인과의 부탁이나 거절도, 욕됨이나 욕함도, 나의 시선이나 타인의 시선도 복잡하지 않다.
더 이상 나라는 사람을 숨길 필요가 없어진 느낌이다. 이것이 묘한 해방감의 정체였다.
잃을 게 없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한 편안한 느낌. 자연인이 된 느낌이다.
지금도 통장잔고 199원만 보면 웃음이 나온다.